음악으로 기억되는 순간 - 영화 "Once" & "천원콘서트"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나는 너를 노래한다.
음악으로 기억될 사랑의 순간.


사랑에 관한 말랑말랑한 메인카피를 들고 나온 아일랜드 음악 영화 "원스(Once)". "원스"에는 화려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같은 눈부신 아름다움도 사랑의 처절함을 노래하는 애달픈 결말도 없습니다. 남루한 현실 속 "음악을 살아가는" 이웃들의 작은 이야기 속에 담아낸 이 영화는 거창하지도 않고 뜨겁게 절정으로 치닫는 에피소드 또한 없습니다.

더블린의 어느 거리. 떠난 연인에 대한 애증과 음악에 대한 미련을 거두지 못하고 거리의 악사로 살아가는 남자,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남편을 잠시 떠나 아일랜드로 이민을 온 후 어린 딸과 어머니를 부양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여자. 이름도 없는 이들은 음악을 통해 공감하며 소통하고 서로의 삶에 대한 용기와 위로를 건네주고 마음을 키워나갑니다.

별다른 이야깃거리도 뜨거운 열정도 없고, 음악이 클라이맥스처럼 등장하지도 않는 이영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음악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은 채 서로를 노래하고 음악으로 기억합니다.

음악을 먼저 들었다면 그저 그런 흔한 음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노래들이 영화 속 이야기와 만나자 빛을 발하고 가슴 속 언저리와 눈 주위 점막을 자극하더군요. 첫장면에서 남자가 뜨겁게 쏟아내는 노래(Say it to me)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여자가 가사를 붙여 부르는 노래(If you want me) 외에도 The hill, Falling Slowly, Fallen From the sky, 자막이 올라가며 흘러나오는 Once까지 보석처럼 빛나는 곡들이 이어집니다.

손 한번 잡는 일 없이 어찌보면 순수한 사랑을 나누는 남자와 여자, 가사로 대신한 노래들과 정곡을 몇 번 찔러주는 대사들은 이들을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아련함을 남깁니다.


[#M_.... 나는 당신의 노래를 듣습니다 ... (기억할만한 장면을 더 읽어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less....|한밤중 길거리에서 포효하듯 노래를 쏟아내는 첫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남자를 향해 서서히 다가갑니다.
"왜 이 노래를 낮에는 부르지 않았죠?"
"아무도 듣지 않으니까요."
"내가 듣잖아요. (I listen)"


드라이브를 하러 바다를 찾은 남자와 여자. "밀루 유 떼베..." 별거중인 남편을 사랑하느냐는 그 남자의 질문에 모국어인 체코어로 대답하고 여자는 총총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체코어를 모르는 나도 그 눈빛만으로도 무슨 말인지 알것 같았는데 그 남자만 몰랐던 걸까요. 아니면 다시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요.

"정말 그러고 싶거든요." ... 서로의 길을 가야하는 어린 소녀는 키도 나이도 자기보다 몇 뼘은 더 큰, 하지만 마음은 아직 자신보다 어린 듯한 남자에게 당차게 선을 긋습니다. 이젠 서로의 길을 가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을 숨기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녹음이 잘 되었는지 허접한 카 스테레오로 들어봐야해"
Samson Studios에서 데모음반을 녹음하고난 후 PD는 업계에서 통용된다는 그 원칙을 재현하기 위해 며칠밤을 샌 그들을 태우고 바다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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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원스의 호평에 몸이 근질하여 홀연히 무작정 영화관에 들어가 보고 나오던 길, 큰 기대만큼 더 벅찼던 감흥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영화관에서 나오자 마자 옆 레코드샵에 들어가 OST 음반을 샀습니다. 오늘따라 하늘은 가을답지 않게 어두운 구름을 가득 안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고, 녹음을 마친 데모CD를 손에 쥔 주인공들인 양 사운드트랙을 손에 들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치 그들처럼 저또한 허접한 카스테레오로 영화 속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들처럼 바다로 향한 건 아니었지만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가을바람을 맞으며 구름 머금은 날씨에 음악을 다시 듣는 기분이란, 영화의 감동을 곱배기로 안겨주는 전혀 기대치 않은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원스의 에필로그였다고나 할까요. 여러분도 꼭 극장에 가셔서 보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감흥을 곱씹으며 음악을 들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저도 곧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은 영화거든요.

내친 김에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드릴게요.
지난 9월 20일에는 태우님의 천원콘서트 시즌 3가 열렸습니다. 혼자 무대를 지켰던 시즌 2보다 화력이 4배는 막강해진 공연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동생 태섭님과 사촌분 두 명이 함께한 Cousins 합동 공연이었거든요.

[##_Gallery|1586862940.jpg||3039923137.jpg||2402119859.jpg||6694191428.jpg||7637631841.jpg||width="400" height="300"_##]
음악을 전공하지 않는다는 사촌형제들이 모두 놀라웁게도 빼어난 음악적 역량을 발휘하시더군요. 기타, 피아노, 플룻을 직접 연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두 저마다 자작곡에 코러스, 노래까지. @.@ 태우님이 음악인과 시인의 피가 흐르는 예술인 가문의 자제분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계속 서로들 입모아 "프로가 아니라서 미흡하다"고 말을 했지만, 아마추어라기에는 너무 감동적이고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전문배우가 아닌 뮤지션이 직접 출연해서 더욱 화제가 되고 생생한 감동을 전해줬던 영화 원스를 보고 나오던 길, 태우님의 천원콘서트를 떠올렸던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겝니다.

용기가 부족하여 앵콜곡을 신청하지 못했던 게 아직까지도 못내 아쉽습니다. :(
음질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그날 녹음을 한 몇 곡을 들려드려볼게요. 태우님께서 저작권 운운은 하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


먼저 들으실 곡은 윤정님이 노래를 부른 Alicia Keys의 "If I ain't got you"입니다. 근사한 목소리를 지닌 윤정님의 보컬과, 태우님의 피아노 연주와 감미로운 코러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가족들이에요. (볼륨을 조금 높여 들으셔야 해요)

[##_Jukebox|2605979244.mp3|if i ain't got you|autoplay=0 visible=1|_##]

[#M_... 천원콘서트 노래 더 듣기 ... (음악을 들어보고 싶은 분은 여기를 클릭하세요)|less...|태우님의 동생 태섭님이 작곡, 연주한 Song for the day입니다. 원곡과는 사뭇 다르지만 가족이 함께 연주하기 위해 새롭게 편곡한 곡도 듣기 좋았습니다.[##_Jukebox|1426714949.mp3|song for the day|autoplay=0 visible=1|_##]
다음 곡은 태섭님이 혼자 연주한 Coming입니다. 이곡 또한 태섭님이 만든 곡으로 원곡은 느린 블루스 버전으로 꽤나 매력적인데, 이날 놀라운 기타 연주실력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더랬지요. 녹음된 음질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볼륨을 약간 높이셔야 할거에요. 앵콜을 신청하고 싶었던 곡이었습니다. [##_Jukebox|9059697168.mp3|coming|autoplay=0 visible=1|_##]
이 곡 또한 태섭님이 작곡하고 모두 함께 부른 "바다가 부는 밤"이라는 곡입니다. 이 날 발표한 신곡이라지요. 휘파람 소리가 잘 안 나긴 했지만, 흠. 참 좋았어요.
[##_Jukebox|4432255632.mp3|바다가 부는 밤|autoplay=0 visible=1|_##]
마지막 곡은 음질이 그닥 좋지 않지만, 윤정님과 태우님이 함께 부른 "Lean On Me"입니다.
[##_Jukebox|8300494528.mp3|lean on me|autoplay=0 visible=1|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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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있어서 행복한 날들입니다. 좋은 음악과 함께 힘내시고 모두 즐거운 한 주, 힘찬 10월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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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읾오| Sep 30, 2007

    영화를 보는 동안 잔잔하지만 계속 안에서 끓어 오르는 것이 있었죠

  • 호랭이| Sep 30, 2007

    ㅎ.ㅎ 백일몽님? 이름이 안습... 쿨럭!!
    한밤중에 듣기에도 좋은 노래군요!

  • 프리버즈| Sep 30, 2007

    각도를 보아하니, 3번째 사진은 제가 찍은거네요. ㅋㅋ

  • 에이콘| Oct 01, 2007

    백읾오님, 개명하셨군요! ㅎ 그치요. 진실을 이기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지요. 정말 잔잔한 영화였지만 오히려 끓어오르는 뭔가는 다른 어떤 영화에 못지 않았던 것 같아요.

    호랭이님, 글도 열심히 써주시고 열혈 댓글러 등극이십니다요. 감사해요. ^^/

    프리버즈님이 찍은 사진 다 잘 나왔어요.  프리버즈님 분발하세요. 1등 댓글러 호랭이님께 뺏기겠어요. ㅎㅎ

  • 호랭이| Oct 01, 2007

    오예~ 제가 1등인 거예요? 초딩때 둘이 뛰는 달리기에서 1등해 본 이후... 1등은 처음인가? =_=; ㅎㄷㄷ

  • 다희| Oct 01, 2007

    영화관에서 두번 봤어요^-^ㅎ
    바로 ost 사고~
    출근길에 듣기는 좀 힘겹지만 퇴근길 버스 안에서 듣기는 참 좋다는-
    콘서트 때 노래도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 에이콘| Oct 01, 2007

    다희님, 저희도 조금전에  WPF 출간기념 / 에이콘 단체관람 심야영화로 원스를 보고 왔어요. 저는 덕분에 근 36시간만에 이 사랑스런 영화를 두 번이나 보게되었네요. 내일은 힘내서 마감 잘 할 수 있을 듯해요. ^^/ 콘서트 노래들도 원스 OST 못지 않게 참 좋죠? 자주 들러서 많이 듣고 가세요~.

    ㅎㅎ 호랭이님 덕분에 블로그가 활기가 넘쳐서 좋군요. 감사하다니까요~

  • bigt| Oct 02, 2007

    공연후기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연주들 좀 아쉽긴 하지만 암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 Cinerge| Oct 03, 2007

    들을만한 마땅한 라디오 프로그램도 없는 요즘은 영화가 새로운 음악들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이 되고 있네요. 특히 영화 속 장면들과 연관이 되니 더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곤 합니다.

  • 에이콘| Oct 03, 2007

    bigt님, 독대하여 기타 독주를 들을 기회를 놓쳐서 아쉬워요. :( 잘 돌아가시고 앞으로도 블로그 통해서 좋은 음악 많이 들려주세요.
    Cinerge님이 블로그에 쓰신 영화평 잘 읽었습니다. 저희 블로그에는 영화 말고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간간히 들러주시고 좋은 영화 있으면 귀띔도 해주세요. ;)

  • 열이아빠| Oct 23, 2008

    이 글 보았던것이 얼마전이었던거 같은데
    1년도 넘었군요.
    음악들이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기억이 나는것 같으면서도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군요.
    오랫동안 미루어왔던 일을 이제야 하고나니
    시원하네요.
    저도 OST 한번 사보아야 겠네요.

  • 에이콘| Oct 24, 2008

    저도 열이아빠님 덕분에 지난 글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올린 지 한참 된 글에 이렇게 댓글이 달리면 정말 반가워요. 고맙습니다. :) 얼마 전 '고고70'을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냥 가슴이 후끈 달아올랐던 기억만 남네요. 물론 각각 성향이 다른 영화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뭐랄까 여운이나 감흥이 오래 남기로는 "원스"만한 영화는 흔치 않은 듯합니다. 제 취향이기도 하겠지만요. '내 인생의 영화'로 꼽아도 손색 없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