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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해커 [인터넷에 연결되었다면 더 이상 당신의 컴퓨터가 아니다]

  • 지은이박기남
  • ISBN : 9788960777941
  • 18,000원
  • 2015년 11월 27일 펴냄
  • 페이퍼백 | 360쪽 | 152*224mm
  • 시리즈 : acornLoft

책 소개

요약

견고히 세워진 세상의 규칙들에 의문을 던지고 기다린 듯 쏟아지는 비난과 조롱들 앞에서, 자신은 잘못된 사람이라 손가락질 받아야 한다면 그의 의문은 꽤 정곡을 찔렀다는 얘기다. 악취 나는 권력을 조소했던 한 해커의 저항의 기록. 그 요동치는 진실을 이제 당신에게 건넨다.

책 소개

“동물원 철창 속으로 끌려온 야생의 원숭이 한 마리가 있었다. 그에게 원숭이들이 다가와 말했다. 이곳은 아무런 대가 없이 집과 음식과 놀 거리가 넘쳐나는 천국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음식을 마다하고 몇 날을 굶어 야윈 몸을 만들었고 겨우 철창 사이로 몸을 빼낼 수 있었다. 그때 그의 나뭇가지 같은 발목을 붙잡은 건 사육사가 아닌 돼지처럼 살이 찐 다른 원숭이들이었다. 네가 그렇게 가버리면 우리들의 믿음이 깨지니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자신들을 멍청하고 용기 없는 원숭이로 만들려 했으니 끼니마다 바나나를 한 박스씩 먹어야 한다고도 했다. 너도 돼지가 되라며 다 너를 위해서라고 했다.”

『헬로 해커』는 한국사회에서 터부시된 권력을 향한 물음을 꺼내 들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세상이란 이름의 괴물. 사람들은 가끔 자신도 그중 하나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 물어야 할 때가 있다. 이 책은 이 물음을 쥐고 독자들을 벼랑으로 이끈다. 더는 도망칠 곳 없는 그곳에서 이제 대답을 내놓으라고 흔들어 댄다.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자신의 발톱을 숨기고 살아가는 해커가 등장한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IT 분야를 배경으로, 컴퓨터 해킹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문학으로 끌어들였다. 멀게만 느껴졌던 프로그래머들의 일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지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1과 0들의 향연이 아닌 라디오 주파수처럼 지직거리는 아날로그 신호들로 따뜻하게 입혀져 있다.

책 속으로

해킹? ‘시킨대로 해.’라는 무겁게 짓누르는 권위 가득한 목소리에 ‘잠깐 그 입 좀 다물라.’고 재갈을 물리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이 거대한 규칙의 사슬들로부터 탈출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들어가지 말라는 푯말을 사뿐히 무시하고 잔디밭을 나뒹구는 골칫거리 꼬마 녀석들, 그들 중 누군가는 해커가 될 테니까 --- p.19

누군가를 조정하고 싶다면, 그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선악과를 먹이면 누구든지 당신을 심판자로 여기고 따르게 될 것이니까. 그러니 신참내기 해커가 풀어내야 할 첫 번째 자물쇠는 마음 깊은 심연에 덩어리져 있는 죄의식, 그걸 꺼내어 내동댕이치는 것이다. 다시는 나의 아버지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 p.20

채팅룸은 현실세계보다 더 선택의 폭이 넓었다. 그곳에는 육체도 없었고, 관계의 지속을 대가로 지불해야 할 사회규범 따위도 없었다. 단지 깜빡이는 커서 뒤로 진실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 도덕률에 얽매이거나, 거드름을 피우는 기름덩어리들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수모를 참지 않아도 될 뿐더러, 누군가의 개똥철학에 가식의 미소로 화답할 필요조차 없었다 --- p.20

터미널을 실행시키고 스크립트 코딩을 시작하지만 눈이 코드를 바라보는 건지 코드들이 내 눈을 바라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바닥을 차갑게 느끼는 건지 바닥이 나를 차갑게 느끼는 건지도 구분해낼 수 없다. 다만 그 어딘가에 ‘차가움’이 있을 뿐이다. ‘나’라고 부르는 게 무언지도 석연치 않다. 그렇게 모니터에 코드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바라보는 것이다. 세상에는 너와 나, 오로지 단 둘만의 조화가 있고 코드들은 창조되고 프로그래밍은 연주된다. --- p.38

“그래서 네가 얻는 건 뭔데, 의리? 의리 있는 놈이 기업정보 훔치고 군사정보 훔치고 대기업 간부 여편네들 뒷조사나 하고 다닌거냐? 어?” --- p.75

이 세상의 게임에 너를 동참시키고 싶지 않았단다. 그건 너무 가혹한 룰이며 공정치 않았으므로 그리고 너의 그 재잘거리는 모든 질문들에 척척 대답을 해대는 어른들도.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실은 그들 역시 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음을 알게 될 거다. 하지만, 사랑한다. 그뿐이다. --- p.126

순서를 지키자. 지금의 순서에 집중하자. 다음 순서나 이전 순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먼저, IIS 5.0이라 불리는 웹서버에게서 제어권을 빼앗아야 한다. 그 후에 다른 컴퓨터들을 침입할 것이다. 성급해선 안 된다. --- p.141

재미난 건 보안취약점이 발견되었고 심지어 공격코드까지 공개되었는데도 웬만한 업체에서는 그것을 고치려 들지 않는다는 엄청난 게으름이다. “문제가 있으니 고치세요.”라고 말을 해주어도 “그게 내 책임이야? 음, 누굴 시켜야 하지? 음, 그걸 고쳐 보려다가 괜히 잘 돌아가고 있던 서버에 문제라도 생기면?” 이런 식이므로, 해커들에게는 죄책감이 들 만큼이나 쉽게 열려있는 사냥감이라고 할 수 있다. --- p.143

정 의원은 상의를 스스로 벗어 양 실장에게 건넸고, 팬티 차림으로 구두만 신은 그의 적나라한 모습이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우스꽝스럽다는 상식마저 뒤엎을 수 있었다. ‘내가 기준이다. 내가 상식이다!’ 온 세상의 그 어떤 관념조차도 자신의 뻔뻔한 위엄 앞에 무릎 꿇릴 자신이 있었다. --- p.168

그들은 회사가 직원들에게 바라는 것과 직원들이 회사에 바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회사를 대표하는 임원진이 늘 승리를 가져가야 한다는 것도 숙제처럼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이 돈만 축내며 어떻게든 일을 안 하려고 애쓰는지를 발견해 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자신들의 일방적인 승리가 합당한 결과임을 설명해야 했다. --- p.198

여기서 말하는 ‘괜찮은 그림’이란 이렇게 사소한 일에도 자꾸 지근지근 밟아줘야지만 주위 사람들한테 내가 말랑하지 않다는 걸 일깨워 줄 수 있다는 의미다. 누구든 나를 쉽게 보지 말아야 한다. 원래가 세상이 이렇다. 약한 걸 들키면 잡아 먹힌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누군가는 희생이 돼줘야 한다. --- p.207

꿀단지, 그것이 허니팟(honey pot)의 사전적 의미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무엇, 유혹적인 무엇이다. 하지만 해커들의 세계에서 허니팟이라는 단어는 덫을 의미한다. 다른 해커들에게 함정을 파놓고 ‘자, 너희들이 그렇게 뚫고 싶어하는 머신이 여기에 있다. 한번 이곳을 뚫어봐라. 실력을 발휘해 보라구.’ 하고 유혹하는 것이다. 일부러 침입하기 쉬운 취약점을 꿀처럼 발라놓는다. 파리지옥이라는 식물을 상상한다면 매우 근사치의 이해라고 할 수 있겠다. --- p.228

기다려야 한다. 녀석의 침입이 이루어지는 순간, 자동으로 접속자의 IP 주소를 조회해내고 연이어 후이즈 검색을 수행하도록 손수 작성한 스크립트를 준비해 두었다. 자신을 추적해오는 하이에나의 위치부터 파악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녀석이 쓰는 침입 기법까지 분석해낸다면 어느 정도 수준의 해커인지도 알아낼 수 있다. 겁먹을 필요 없어. ‘조심해야 할 거야. 지뢰를 심어 놨거든. 네놈 다리가 먼저 잘려 나간다.’ --- p.231

실제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그어버린다 해도 아무도 원망치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저 그런 일이 벌어진 것뿐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자신을 짓누르던 몸무게가 모두 다 사라져버린 것 같은 자유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는 한 번도 교회에 나가본 적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신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넸다. ‘저, 이제 살아보고 싶어요.’ --- p.313

공인인증서의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는 키보드 후킹 기술이 작동되지 않기 때문에 고객의 비밀번호가 새나가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보안전문가들이 있지만, 아주 간단한 트릭으로 그들의 방패가 처참히 깨져버린다는 사실은 보안업체들의 공공연한 영업기밀인지도 모르겠다. --- p.318

죽음조차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사람들의 희망이 예상치도 못하게 어이없이 부서져 버린다 해도 세상은 ‘내가 그런 데 신경 쓸 만큼 한가해 보이냐’는 식이었으니까. 그러니 녀석의 눈깔을 움켜쥐어야 했다. ‘여기를 봐! 여기를!’ 미연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순 없지만, 최소한 자신이 괴물이 아니라는 건 알려야 했다. 진짜 괴물들이 누구인지 알려야 했다. 그들에겐 응징이 필요한 것이다. --- p.329

수년간 해킹과 프로그래밍을 해온 현수의 눈에 이 코드들은 정상이 아니었다. 현수는 외부에서 사람이 직접 값을 입력하도록 옵션이 주어졌을 때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화면상의 라인 그래프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하게 규칙적인 차이를 발생시키며 그려져 가는 것이 보였다. --- p.333

진실을 말하려거든 그로 인해 죽어갈 수많은 거짓말들의 공포와 비명을 그들이 아닌 바로 내가 견뎌낼 수 있어야 했다. 비겁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내게 득달같이 달려드는 세상의 온갖 증오들을 향해 너희를 미워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 p.353

저자/역자 소개

지은이의 말

위로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지금 조동현이나 김진만 같은 이름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여자가 되어 있을지도, 한국과는 다른 곳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이 책이 전해지리라고 믿는다. 그는 특별할 게 없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고 작은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어느 날부터인지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캡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이어폰을 꽂은 채 고개를 떨구어 다녔다. 새까맣게 변한 얼굴로 가끔 무언가에 미쳐있는 사람처럼 그림을 그리거나 무슨 글귀인지 알 수 없는 문장들을 휘갈겨 써대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 그에게 떠나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히 물었을 때, 미소를 잃은 얼굴로 그는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아야겠어요.’라고 말했다.

그가 떠나고 누구도 그의 아픔을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이유를 아는 자들은 침묵을 지켰고 모르는 자들은 알려 하지 않았다. 그건 위험한 행동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뭔가 잘못된 사람이라 믿기는 게 편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급히 일상의 대화들로 돌아왔다. ‘오늘 점심 뭐 먹지?’

나는 그이기도 했던, 그리고 언젠가는 그가 될지도 모를, 그리고 또한 그를 돌아봐야 할 누군가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었다. 무엇을 느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지만 다만 기록을 남기고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말자고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는 고백으로 이 책을 시작해야겠다. 그의 영혼에 칼을 꽂은 건 나였으니 말이다.

지은이 소개

박기남

서울소재 모 대학 전산실장과 네트워크 보안회사의 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으며 현지 대학에서 수학하며 집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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