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지난 주 플렉스란 연극이 끝난 후 익숙치 않은 정적이 흐르던 에이콘의 금요일 오후, 머리를 식힐 겸 주변에서 30분 만에 갈 수 있는 곳을 골라 직원들끼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유명한 공지영의 소설을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이 영화화했고, 배역에 영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나영, 강동원이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영화였고, 개인적으로는 평생 몇 번 울지 않았다던 모 신문사 영화부 기자의 눈물을 쏙 뺐다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디따시만하게 큰 태양이 무서워" 자기를 해하고 세상을 등지고 사는 한 여자와,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버거운 삶 속에서 남을 해하고 희망없이 살아가는 한 사형수가 만나 처음으로 마음을 소통하고 치유하며 사랑을 느끼고, 누군가를 용서해가는 모습들을 그렸습니다. 너무나 사랑이 넘치는 교도관과 살스럽지 않은(!) 교도소의 풍경, 달동네의 허름한 모습과 대비되는 부촌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회 부조리를 논하고, 사형제도에 대한 제언까지 너무 많은 내용을 담았기에, 이 영화가 기대보다 촘촘하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클리셰가 마음을 울릴 수도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소설과는 달리 이 영화의 방점은 마음을 굳게 닫던 이들이 소통하고 위로하는 기억에, 그리고 여지 없이 "사랑"에 놓여있었습니다. 때문에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은, 마지막 순간의 고백은 가슴을 울리더군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서로에게 귀 기울여준다는 것, 마음으로 그 사람의 말을 마음을 받아들이고 안아주는 것이었지요. "사는 게 지옥 같았는데 나 살고 싶어졌습니다"라던 사형수 윤수와 유정이 만났던 목요일 10시부터 1시까지 교도소 접견실에서의 시간은 그래서 더욱 소중했을 겁니다.

가슴 시리지만 안온하고 행복한 추억으로..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준 감사한 기억으로..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바라보던, 구름 가운데 햇살이 드리우던 하늘. 오늘이 딱 그런 가을날이네요.


[#M_스크린 개봉관에 대한 불만 하나.|less..|저희 출판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의왕시이지만 안양 평촌, 과천 인덕원에 맞닿아 있고 뒤로는 계원예대가 자리하고 있어서 공기도 맑고 여러 주변 환경도 쾌적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괴물이라는 영화 한 편을 계기로 스크린쿼터니 스크린 독과점이니 말이 많습니다. 조금은 정치적인 발언은 뒤로 하고라도 다른 무엇보다도 보고 싶은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은 정말 문제인 것 같습니다. 괴물이 스크린을 독차지 한 데 따른 독과점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그나마 서울 쪽에서는 몇관에 불과하기는 해도 CGV 인디영화관을 운영하고 있고, 시네큐브나 폐관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좋은 영화 많이 걸고 있는 씨네코아, 아트시네마 등이 있지만, 학원가와 온갖 먹거리상점은 즐비하여 어떤 문화 소비지역 부럽지 않은 이 곳에 좋은 영화, 아니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딱 끄집어내서 볼만한 곳이 적은 것은 정말 불만입니다.
몇 개의 멀티플렉스가 줄을 선 이곳에서도 언젠가는 남들과는 다른 영화를 틀기 위해 한 관쯤 할애해줄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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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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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랭이| Jul 12, 2007

    그러고보니 제가 아직 못 읽은 포스트도 많군요. =_=;